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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례는 저희 이현에서 직접 수임하여 처리한 사건으로, 의뢰인 특정 방지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종중과의 토지 분쟁에서 승소한 의뢰인을 H라고 칭하겠습니다.
선산
한국의 종중에게 선산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수백 년간 조상의 묘를 모시는 곳이자,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살던 일가친척이 한 곳에 모이는 유일한 장소다. 묘에 떼를 입히고, 시제를 지내고,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안부를 나눈다.
충북의 어느 산도 그런 곳이었다. 수만 평이 넘는 넓은 임야에 수십 기의 조상 묘가 산자락을 따라 줄지어 있었고, 집안 어른들은 그 산을 ‘우리 선산’이라 불렀다.
다만, 모두가 ‘우리 선산’이라 불렀던 이 산의 등기부에 찍힌 이름은 종중이 아니었다. H네 가족이었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까지, 4대에 걸쳐.
4대째 우리 땅인데?
시작은 일제강점기였다.
당시 종중 소유의 토지를 등록하려면 단체가 아닌 개인의 이름이 필요했다. 보통 집안의 장손이 이름을 올리는 관행이 있었는데, H의 증조부도 이렇게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사정이 복잡해졌다. 같은 종중원이었던 한 친척이 소유권 관련 문서를 위조해서 이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등기해버린 것이다.
H의 조부는 그 친척과 제3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겨우 소유권을 되찾아왔다. 이 소송 과정에서 결정적이었던 건, 그 친척을 포함한 종중원들이 법정에서 “이 땅은 원래 H 증조부 개인 소유”라고 증언한 것이다.
자기가 빼앗으려 했던 땅의 원래 주인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법원은 이 증언 등을 근거로 H의 조부에게 소유권을 돌려주었다.
그 판결 이후, 이 토지는 다시 H 가족의 이름 아래 조용히 놓여 있었다. 조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가 상속받았고, 아버지는 다시 장남인 H에게 증여했다.
H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이었다. 등기부에 4대째 찍혀 있는 가족의 땅.
산림청
증여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림청에서 연락이 왔다. 임야의 일부를 매입하겠다는 것.
H는 고민 끝에 토지의 약 80%를 매각했다. 약 2억 원. 크고 작은 빚도 갚고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돈이었다.
‘내 이름으로 된 내 땅을 국가 기관에 정당하게 판 거니까.’
H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해 봄 한식날, 종중원들이 대행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묘에 떼를 입혀달라고 부탁했다. 주소를 알려주니 돌아온 답이 이상했다.
“그런 지번의 토지는 없는데요?”
등기부를 떼어보니 선산의 80%가 산림청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매각 사실을 알게 된 친척들은 즉각 법적 조치에 나섰다.
H의 남은 토지에 처분금지가처분을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압류까지 걸었다. 그리고 소장이 날아왔다.
“피고 H는 이 사건 토지에 관하여 명의신탁 해지를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이행하라.”
“피고들은 공동하여 약 2억 원을 지급하라.”
H는 소장을 읽고 또 읽었다. 종중의 주장은 이랬다.
일제강점기 때 장손에게 이름만 빌려준 것이다. 이후 대대로 명의만 넘긴 것이지, 진짜 주인은 처음부터 종중이다. 네가 판 2억은 종중 돈이니 돌려내라.
어느 날 갑자기, 가처분에 가압류에 소장까지. 내 이름으로 된 땅을 국가에 정당하게 판 건데, 하루아침에 도둑이 되었다.
복사본과 막도장
H는 종중 소송의 전문가를 수소문해, 법무법인 이현을 찾았다.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증거를 꽤 많이 들고 나왔거든요.”
H가 가져온 서류를 펼치자 상대방의 카드가 보였다. 수십 년 전 작성됐다는 임대차 계약서에 임대인이 한자로 ‘○씨 종친회 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조부가 개인이 아니라 종친회 대표 자격으로 행동한 흔적.
조부의 자필 각서라는 문서에는 “후세에 독자적으로 매도하지 못하게 영구 보전하기 위하여” 지분을 나누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거기에 수십 기의 묘 사진, 시제 기록, 종중원들의 진술서까지.
‘이걸로 지면 어떡하지? 땅도 빼앗기고 2억도 물어야 하는데.’
이현의 이환권 대표변호사가 수임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반격이었다. 상대방이 가처분을 걸어놓고 정작 본안 소송은 바로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H의 재산만 몇 달이고 묶여 있게 되기 때문에, 즉시 법원에 제소명령을 신청했다.
가처분만 걸어놓고 소송을 미루는 상대방에게 법원이 소 제기를 강제하는 절차다. 법원은 종중에게 21일 안에 소송을 제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끌려다니는 싸움이 아니라, 판을 짜는 싸움으로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본안 소송이 시작되고, 이환권 변호사가 집중한 것은 상대방 증거의 근본적인 취약점이었다.
종중이 명의신탁의 핵심 증거로 내민 자필 각서 두 통. 원본이 아니었다. 수십 년 전에 복사해서 보관해왔다는 복사본.
종중은 원본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끝내 응하지 못했다. 복사 과정에서 편집, 모사, 위·변조가 가능하다는 것은 대법원 판례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더 결정적인 모순이 있었다. 이 복사본을 수십 년간 보관해왔다는 종중원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과거 소송 — H의 조부가 토지를 되찾았던 바로 그 소송 — 에서 “이 땅은 원래 H 증조부의 개인 소유” 라고 직접 증언했었다.
그때는 개인 소유라고 증언해놓고, 이제와서 그 후손들이 ‘사실은 명의신탁이었다’며 복사본을 들고 나온 것이다.
임대차계약서도 뜯어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임차인란이 완전히 비어있었다. 임차인이 없는 임대차계약서라니.
게다가 조부 이름 옆에 찍힌 도장은 작은 타원형의 막도장이었다. 이현이 직접 조부가 생전에 거주하던 지역의 주민센터에서 확인한 결과, 등록된 인장은 큰 원형의 인감도장으로 전혀 다른 형태였다.
이현의 이환권 변호사는 정면으로 지적했다. 이 계약서는 위조가 추정되는 문서라고.
종중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필 각서의 필적을 감정해달라며 법원에 신청했다. 전문 감정기관의 감정인이 비교영상분광기와 입체현미경을 동원한 정밀 감정을 진행했고, 이현은 감정을 피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판사에게 불리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 결과는
“동일인에 의한 필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
얼핏 보면 종중에게 유리한 결과 같다. 하지만 “절대적 단정은 어려우나”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고, 무엇보다 복사본이기 때문에 문서의 작성연도 자체를 감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명의신탁이 법원에서 인정되려면 단지 ‘종중이 관여한 흔적’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 토지의 소유권은 종중에 있고, 등기 명의만 개인에게 둔다’는 구체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직접 증거가 필요하다.
자필 각서에 영구 보전을 위해 지분을 약속한 것은, 오히려 토지가 이미 개인 소유임을 방증한다. 진짜 종중 것이었으면 굳이 약속할 필요가 없으니까.
법원도 이 각서가 명의 신탁을 받은 것이라기보다는, 종손으로서 종중 조직을 갖추기 위한 시도에 가깝다고 보았다.
수십 기의 묘가 있다는 것? 개인 소유 산에 집안 묘를 쓰는 건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지점.
‘이 종중은 과연 실체가 있는 유기적 조직인가?’
이 논리를 이환권 변호사는 약 3년에 걸친 소송 내내, 수백 장의 준비서면에 담아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다.
3년, 그리고
수임 후 약 2년이 지난 어느 날. 1심 선고.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H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몇 년을 괴롭히던 짐이 드디어 내려놓아지는 기분이었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토지가 등록될 당시 종중이 유기적 조직으로 존재했다고 보기 어렵고, 임대차계약서의 진정성도 인정할 수 없으며, 자필 각서는 명의신탁 합의를 증명하기에 부족하다.
고로 명의신탁은 인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종중은 포기하지 않았다. 판결을 송달받은 지 2주 만에 항소장을 접수했다. 배상 청구액은 약 2억 원. 처음 논리 그대로였다.
항소심에서 종중은 감정 결과를 다시 강조했고, 시제 사진을 추가 제출했으며, 추가 감정 신청까지 했다.
이현도 멈추지 않았다. 담당 변호사를 추가 지정해 팀을 보강하고, 1심 논리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핵심은 바뀌지 않았다. ‘명의신탁 합의의 직접 증거가 없다.’ 그리고 항소심 선고일.
“항소를 기각한다. 항소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종중은 상고를 포기했고, 판결이 확정되었따.
다만 아직 남아있는 숙제들은 있었다. H의 토지에는 아직 가처분과 가압류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빨리 풀리지 않으면 매도 계약이 깨질 위험이 있었다.
판결이 확정된 다음 날부터 가처분 취소, 가압류 취소, 소송비용확정 3건을 동시에 신청했고, 드디어 재산 동결이 완전 해제된 어느 날.
H가 지켜낸 것을 남은 토지의 소유권과 약 2억 원의 배상 청구 방어. 거기에 역으로 받아낸 소송비용 약 2,100만 원.
사건이 끝나고 H는 이렇게 말했다.
“제일 힘들었던 건 법정에 서는 것보다, 친척들에게 도둑놈 소리를 듣는 거였어요.”
💡
담당 변호사에게 묻다
Q. 종중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그 땅에 있는 묘는 어떻게 되나요?
소송 중이라고 해서 묘가 사라지거나 시제를 못 지내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묘를 함부로 건드리는 게 위험하죠.
처분금지가처분은 등기부상의 처분(매매, 담보 설정 등)을 막는 것이지, 땅 위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행위를 금지하는 게 아닙니다. 시제를 지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다만, 현실은 좀 다릅니다.
조상 묘가 내 땅에 있다는 건, 상대방이 정기적으로 내 땅에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한식에 떼를 입히러, 추석에 벌초하러, 시제 때 절하러. 소송을 하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이 사건에서도 한식날 대행업자가 묘에 떼를 입히려다가 매각 사실이 알려진 겁니다.
묘 이장은 더 민감한 문제입니다. 토지 소유자가 타인의 분묘를 함부로 이장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는 ‘분묘기지권’이라는 관습법상의 권리가 있어서, 오랫동안 관리해온 묘는 땅 주인이 바뀌어도 일정한 보호를 받습니다.
소송 중에 묘를 건드리면 법정에서 극히 불리한 인상을 줄 수 있고, 별도의 분묘 관련 소송까지 붙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종중 측이 소송 중에 묘를 추가로 설치하거나 묘역을 확장하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이건 점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어서, 법원이 좋게 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소송 중에 묘는 그대로 두는 게 양쪽 다 유리합니다. 건드리는 쪽이 불리해집니다.
Q. 만약 이 사건 상대 종중을 대리하셨다면, 결과가 달랐을까요?
달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해하실까봐 먼저 말씀드리면, 종중 측이 억지를 부린 건 아닙니다. 수십 기의 조상묘가 있는 산이 갑자기 국가에 팔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종중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설 수밖에 없어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제로 이 사건을 검토하면서 원고 측에 유리한 부분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대 대리인이 그걸 깊이 파고들지 않았어요.
종중 사건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뒤지면 반드시 뭔가가 나옵니다. 수십 년 치 문서, 증인, 정황들이 어딘가에는 남아있기 마련이거든요.
문제는 그걸 찾아내는 것, 그리고 찾아낸 자료를 법원이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정리하는 겁니다. 종중 소송은 결국 그 싸움입니다.
저는 의뢰인을 만나면 가장 먼저 불리한 점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이 부분은 약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완하겠습니다”라고요.
종중 측을 대리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갖고 있는 자료의 한계를 먼저 파악하고, 빠진 조각을 찾아내고, 그걸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게 제가 하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