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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례는 저희 이현에서 직접 수임하여 처리한 사건으로, 종중 명의신탁 분쟁(소유권이전등기 소송)에서 1심·2심 모두 승소한 사례입니다. 의뢰인 특정 방지를 위해 일부 각색되었으며, 의뢰인을 K라고 칭하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종중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에 가처분을 걸었다면, 끝까지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K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땅만큼은 놓지 않았다. 충남의 어느 마을에 있는 14필지. 할아버지가 직접 매수하고, 집안에서 매년 시제를 지내온 곳이었다.
K에게 넘어온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관리가 번거로워도 쉽게 손을 뗄 수가 없었다. 그냥 땅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우편함에서 법원 봉투가 나왔다.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 결정’
처음엔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알아보고 나서야 실감이 왔다. 그 땅을 팔 수도, 담보로 잡을 수도 없게 됐다는 뜻이었다.
가처분을 신청한 곳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 △△△씨 ○○파 종중’
K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게 있었나?
갑자기 나타난 ‘역사 깊은’ 종중
알고 보니 그 종중은 불과 몇 달 전에 창립 총회를 열고 막 만들어진 곳이었다. 그런데 주장은 거창했다.
이 땅은 원래부터 종중 재산이었고, 선조가 명의만 빌려줬을 뿐이라는 것. 법률 용어로는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이 논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K의 땅은 종중에 넘어간다. 가처분 때문에 땅은 이미 묶였고, 소송이 길어질수록 K의 재산은 그냥 잠겨 있는 것이다.
‘갑자기 생긴 종중한테 조상 땅을 빼앗기게 생겼다.’
종중이라는 말 앞에서 K는 작아졌다. 역사니 혈연이니 내세우면 개인이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조차 몰랐다.
족보를 직접 펼쳐서 숫자를 세어보다
종중 소송의 전문가인 이환권 변호사(법무법인 이현)는 사건을 검토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이 종중이 진짜 종중인가를 따져보는 일.
종중이 소유권을 주장하려면 조건이 있다. 당시에 종중이 실제로 존재했어야 하고, 총회 결의가 적법하게 이루어졌어야 한다. 이는 대법원도 여러 판례에서 못을 박아둔 바 있다.
‘종중 명의신탁을 인정받으려면 당시 종중의 실체가 있었어야 한다.’
문제는 총회였다. 종중 측은 창립총회를 열고 임시총회를 두 번 더 열면서 소유권 관련 결의를 했다. 형식상으로는 절차를 밟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족보를 직접 펼쳐 보니 다른 숫자가 나왔다.
2018년에 발간된 족보 기준으로, 이 종중에 해당하는 19세 이상 생존 종원은 600명이 넘었다. 그런데 종중 측 명부에는 고작 100여 명만 올라 있었다.
총회 소집 통보를 받은 사람이 실제 종원의 15%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법원 판례의 기준은 명확하다. 종중 총회를 열려면 족보를 만들 때와 같은 수준으로 모든 종원을 파악해서 통보해야 한다. 이 종중은 그 기준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다.
600명 중 100명. 이 숫자가 총회 결의 전체를 흔들었다.
파면 팔수록 문제 덩어리
총회 결의를 파고들수록 이상한 점이 계속 나왔다.
3차 임시총회와 관련해 제출된 공식 자료는 4가지였다. 원고 측이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수치, 총회 회의록, 결의서, 참석명부. 네 가지 자료에서 위임장 숫자를 각각 꺼내보니, 가장 많은 수와 가장 적은 수가 무려 31명이나 차이가 났다.
가장 많게는 86명, 가장 적게는 55명. 공식 회의록에는 76명, 결의서에는 57명.
같은 총회의 공식 기록들이 서로 다른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는 건 무언가가 꿰어 맞춰졌다는 뜻이다. 소집 통보가 엉터리였고, 위임장도 믿을 수 없었다. 총회 무효의 근거가 층층이 쌓이고 있었다.
판을 바꿔버렸다
종중 측이 하고 싶었던 싸움은 “이 땅이 우리 거냐, 네 거냐” 였다.
우리는 그 싸움판에 올라가지 않았다. 더 유리한 판을 깔았다.
“그 전에, 너희 총회 자체가 무효 아냐?”
총회가 무효면 종중이 소유권을 주장할 자격 자체가 없다. 소유권 싸움을 할 것도 없이 이길 수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종중 측이 계속 다른 싸움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증거 서류를 무더기로 들이밀었다. 총 16개.
그런데 대부분이 소유권을 다투는 별개 소송 자료들이었다. 우리가 깔아놓은 판, ‘총회 결의가 유효한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16개 중 15개. 관련 있는 서류는 단 1개뿐이었다.
우리는 이 점을 법원에 정면으로 지적하고 15개 전부 기각을 신청했다. 종중 측이 싸움판을 바꾸려 할 때마다 우리가 깐 판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재판 내내 쟁점은 하나였다.
그 총회가 유효했는가, 아닌가.
그래서, 이겼다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 K가 원고로 제기한 두 사건 모두 1심에서 승소했고, 종중 측이 항소한 소유권 소송도 2심에서 다시 이겼다. 최종 종결이다.
갑자기 나타난 종중의 명의신탁 주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대에 걸쳐 이어온 땅은 여전히 K의 것이다.
K는 이렇게 말했다.
“종중이라는 말에 처음엔 너무 겁을 먹었어요. 개인이 조직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해서요.”
하지만 전문 변호사와 함께 검토해보니, 겁먹을 게 전혀 아니었더라고. 자신이 억울함을 느끼는 게 당연한 거였더라고. 그리고 K는 이렇게 덧붙였다.
“변호사님이 족보를 확인하셨을 때 ‘이거다’싶었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 순간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종중 분쟁은 역사와 혈연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다른 소송과 결이 다르다. 법리도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면 상대가 짜놓은 판에 끌려들어가기 쉽다. 개인이 이기기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판결이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에게 이번 판결의 의미를 물었다.
종중은 보통 규모가 큰데, 종원들이 전국에 흩어져 살잖아요. 그러다 보니 연락 닿는 사람만 모아서 총회를 여는 경우가 사실 적지 않아요. 이번 사건은 그 관행에 제동을 건 사례라고 봅니다. 족보상 종원 전체를 기준으로 소집 통보를 해야 한다는 기준이 실제 재판에서 관철됐으니까요. 앞으로 연락되는 사람이 소수인 종중이 소송을 걸어올 때, 이기기가 훨씬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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