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합장묘, 전부 이장될 운명이었지만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
개발이 예정된 임야에 조상 묘가 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땅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묘만은 꼭 지키고 싶어요.”
이때 핵심이 되는 개념이 바로 분묘기지권입니다.
한마디로, 남의 땅에 오래전에 설치된 묘를 그대로 두고 제사·수호를 할 수 있는 관습법상 사용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아버지 묘 때문에 분묘기지권이 생겼으면, 나중에 어머니를 합장해도 같이 보호되는 거 아닌가요?”
“한 봉분인데, 어떻게 절반만 치우라고 할 수 있죠?”
오늘은 제가 실제로 진행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합장된 분묘와 분묘기지권의 범위가 어떻게 갈리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 “이렇게 하면 바로 불법입니다” 합장묘 설치 필수 체크리스트
평생을 관리했던 부모님의 묘가 불법이라고 합니다
의뢰인 A씨는 어느 날 개발회사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습니다.
“귀하의 부모님 합장묘는 당사 소유 토지 위 불법 설치물이므로 전부 굴이하시기 바랍니다.”
A씨는 깜짝 놀라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A씨의 아버지 묘는 1980년대 당시 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받고 설치된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수십 년간 가족은 성묘·제사를 꾸준히 해왔죠. 이 부분은 분묘기지권 성립 요건을 충족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가족은 “아버지 곁에 모시자”며 한 봉분에 합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는 이미 토지 소유자가 개발회사·여러 공유자로 바뀌어 있었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승낙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법적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묘기지권은 기존 분묘 유지 권리일 뿐
새로운 분묘(합장 포함)를 추가로 설치할 권리는 아니다
즉, 외형은 한 봉분이라도 법적으로는 아버지 묘(적법) + 어머니 묘(무권원 설치)가 분리된 것입니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아버지 묘 → 분묘기지권 인정 → 그 자리에 존치
어머니 합장 부분 → 승낙 없음 → 굴이 대상
A씨 가족은 평생 모셨던 자리에서 아버지의 묘라도 지킬 수 있다며 안도했습니다.
합장묘인데 왜 한 분의 묘만 인정됐나요?
문제는 합장 시점이었습니다.
어머님을 합장하던 때에는 이미 토지 소유자가 여러 공유자 + 개발회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합장에 대한 승낙을 받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는 이게 아주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분묘기지권은 기존 묘를 유지할 권리이지, 새로운 묘를 추가로 설치할 권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원은
“어머님 합장 부분은 무권원 설치(허락 없는 새로운 분묘 설치)”라고 본 겁니다.
겉으로는 하나의 봉분이지만, 법률은 “누가 먼저, 어떤 근거로 안치됐는지”를 따져서 각각 평가합니다.
어머님 묘 = 새로운 묘의 추가 설치 → 보호 대상 아님
그래서 한 봉분이지만 절반만 인정되는 조금은 낯설고 특이한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합장묘에서 아버지의 묘를 지킬 수 있었던 분묘기지권, 인정받기까지..
사실 아버님의 묘를 지키기까지도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전략으로 아버님의 묘를 지켜드릴수 있었죠.
1) 분묘기지권의 “출발점”을 정확히 잡았습니다
이 사건의 승부는 “언제, 누구 허락으로 묘가 만들어졌는가”에서 갈렸습니다.
오래된 문서, 가족 진술, 주변인 진술 등을 모아
“아버지 묘는 당시 토지 소유자의 명시적 승낙으로 설치됐다”는 점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단순히 “허락했어요” 수준이 아니라,
시간·관계·정황을 맞춰가며 법원이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로 구성했습니다.
이게 인정되지 않았으면, 아버지 묘조차도 ‘불법 설치’로 보였을 위험이 있었습니다.
2) ‘승낙’ + ‘시효취득’ 두 축으로 전략을 세웠습니다
재판에서는 한 가지 법리만 밀어붙이면 예상 밖의 증거 문제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승낙에 의한 분묘기지권 취득을 1차 주된 주장으로,
동시에, “설령 승낙이 없었다고 보더라도
수십 년 동안 평온·공연하게 점유한 이상
시효취득으로 분묘기지권이 완성되었다”는 점을 예비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승낙에 의한 취득을 중심으로 판단했지만, 그 뒤에 시효취득 논리라는 ‘안전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주장 구조가 더욱 탄탄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복잡한 공유지 구조를 하나하나 분해해서 정리했습니다
토지 등기를 살펴보면,
오래전부터 친척 여러 명이 공유자로 등기
그중 일부 지분이 매매·상속을 거쳐
결국 개발회사와 일부 친척들의 공유 상태로 바뀐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시간순으로 도식화해서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언제 누가 토지를 소유했는지”
“아버지 묘가 설치될 당시의 소유자는 누구였는지”
“그 후에 지분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이걸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적어도 아버지 묘를 만들던 시점에는,분명한 토지 소유자의 승낙이 있었다”
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4) 토지 소유자의 “모든 묘 굴이” 요구에 방어선을 쳤습니다
개발사 측은 당초,
“합장묘 전체를 굴이하라, 토지도 인도하라”
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범위를 정확히 특정하고,
그 바깥 영역(어머니 합장 부분)에 대해서만
토지 소유자의 권리 행사가 가능하다는 구조로 방어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아버지 묘 부분 = 토지 소유자도 손댈 수 없는 영역
어머니 묘 부분 = 토지 소유자가 방해제거를 청구할 수 있는 영역
으로 나누어 판단했고, 이를 통해 개발사 측의 ‘전면 철거’ 시도는 막아낸 셈입니다.
분묘기지권을 얻지 못했다면 바꼈을 상황
이 사건에서 만약 전문적인 법률 대응이 없었다면, A씨에게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합장묘 전체가 “불법 묘”로 취급될 위험
아버지 묘 설치 과정에서의 승낙·관계·경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면,
재판부 입장에서는 “그냥 오래된 불법 설치”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부모님 합장묘 전체에 대한 굴이 의무 부담
개발사 주장대로,
아버지·어머니 모두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했을 수 있습니다.
토지 인도 및 비용 부담 문제
분묘 굴이 비용, 새 묘지 마련 비용, 이장 의식 비용 등
상당한 경제적 부담까지도 A씨 측이 온전히 떠안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서적 상실감과 가족 갈등
“우리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정리가 되었다면,
가족들 사이에서도 큰 갈등과 상실감이 남았을 겁니다.
이번 결과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아버지 묘만큼은 정당하게 보호받았다”는 점에서
심리적 의미가 매우 컸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분묘기지권이 정확히 뭐예요?
A.
간단히 말해, 남의 땅에 설치된 묘를 계속 두고 제사·관리를 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오래전부터 관습으로 인정된 권리라서, 등기되어 있지 않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법원이 분묘기지권을 인정해 주기도 합니다.
Q2. 배우자 합장을 하면 자동으로 분묘기지권이 생기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건처럼 기존 분묘에 분묘기지권이 있다고 해서, 그 땅 위에 배우자 합장묘를 새로 만드는 권리까지 생기는 건 아닙니다.
합장 당시 토지 소유자의 승낙이 없다면,
새로 설치된 부분(합장된 배우자 묘)은
분묘기지권의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Q3. 분묘기지권이 있으면 절대 이장 안 해도 되나요?
A.
그렇지도 않습니다.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면서 이장 비용·장소 등에 대해
협의를 제안해 올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 이장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해결책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분묘기지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협상력과 조건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먼저 법적 권리관계부터 정확히 따져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Q4. 개발사가 갑자기 “묘를 치워라”라고 통보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무조건 서둘러 이장부터 하시면 안 됩니다.
먼저,
묘가 언제 설치되었는지
당시 땅 주인이 누구였는지
승낙이나 묵시적 허락이 있었는지
그동안 제사·관리 경위는 어땠는지
등을 정리해서 분묘기지권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다음,
토지 소유자와의 협의
필요시 소송(분묘기지권 확인, 굴이청구 방어 등)을 통해
묘의 존치 범위와 조건을 명확히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분묘기지권은 토지 소유 관계, 승낙 여부, 설치 시기, 제사·관리 경위, 합장 여부와 방식 등이 모두 얽혀 있는 복합적인 법률 문제입니다.
특히 이 사례처럼 합장묘의 경우, 한 봉분 안에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모두 보호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만약 지금,
개발사나 토지 소유자로부터 분묘 이장 요구를 받고 계시거나
조상 묘에 대해 분묘기지권이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혼자서 고민만 하지 마시고, 관련 사건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한 번 상의해 보시길 권합니다.
의뢰인과 함께 지켜야 할 것과 현실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을 차분히 구분해 나가는 과정, 그게 바로 저희 같은 변호사가 옆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